2025년 고난주간 특새 - 주기도문(4) 페이지 정보 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1,105회 작성일 25-04-16 21:44 목록 본문 주기도문(4) –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1. 네번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용서’다.<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사람들 가운데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없다. <요일1:8> 말씀 보면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다. 사실 모든 죄는 하나님에 대하여 범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는 말씀처럼,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누구나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들이 먼저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2.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들이 뱀의 유혹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었던 아담과 하와 같이 우리들 모두가 아담의 후손으로서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에 대해용서하기 보다는 선악을 구별하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보다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하면 그것이야 말로 말로 사단의 영에 이끌렸던 아담과 하와와 같이 나 역시도 어둠의영에 이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내 자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해 주셨다고하는 은혜를 망각하며 살기 때문이다. <마18:21-35>에서 베드로가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 이 후에 예수님께서는 어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다 아는대로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진 종이 있었는데, 갚을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다.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겨우 백 데나리온, 다시 말해 탕감 받은 일만 달란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양의 빚을 진 한 동관을 만나서 그를 붙들고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그 동관은 엎드려 간구하기를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라고 했다.그럼에도 종은 허락하지 않고 빚을 갚도록 그 동관을 옥에 가두어 버렸다.이를 다른 동관들이 보고 민망하게 생각해서 주인에게 되어진 일들을 고했고, 노한 주인은 빚을 다 갚도록 종을 옥졸들에게 붙였다. 종이 일만 달란트와 비교도 안되는 적은 금액의 빚을 진 동관을 참아주지 못한 까닭은 그 자신 임금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았다고 하는 은혜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3. 우리는 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예수 안에서 용서 받은 사람들이다. <겔16:6> 이하의 말씀을 보면 어떤 이가 지나가다가 길 가에 버려진 핏덩이를 보게 됐다.‘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그래서 해서 거둬서 씻기고 먹이고 단장을 해서 아름다운 여인이 되게 했다.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고 사망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으셨던 아무런 죄가 없으셨던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고통을 받게 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주홍 빛과 같이 붉고 더러운 죄를 씻어 주시고, 동이 서에서 먼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심판과 저주가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대신 십자가의 형벌에 내어 주시는 엄청난 희생을 하셨던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를 <롬5:8>에서 이르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확증하셨느니라’라고 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죄와 허물 그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용서가 필요한 것이다.그럴 때 우리들도 용서 받는다. 4.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첫째, 조건이 없이 해야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 어떤 조건이 있으셨는가?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조건이나,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조건, 다시 말해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용서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도 아무 조건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용서는 제한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신 것은 숫자를 세면서 “이번에는 몇 번 째야, 한번 만 더 잘못하면 그때는 절대 용서 없어!”라는식의 용서가 아니다. 일흔 번식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나는 말씀은 언제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용서 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내가 해서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언제까지라도 그 영혼을 사랑해서 용서하고 기도해 주는 것 뿐이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셋째, 용서는 우리의 마음 중심에서부터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18:35>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우리는 말로는 용서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것은 용서가 아니다. 거짓이고 회피일 뿐이다. 그것은 언젠가 마음의 쓴 뿌리로 남아서 그 자신에게 해를 끼치게 되고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용서하는 것은 우리 마음 중심에서부터 하나님 보실 때 “너 정말 용서했다”라고 인정하실 만큼의 용서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넷째, 어쩌면 이것이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이라도 용서 하셨는데 나라고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어디 있는가?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미 용서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그 사람을 용서 할 수 없다는 것인가?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사람을 용서하셨음을 믿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5. 용서할 때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있는가?첫째, 용서할 때 용서 받는다. <막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둘째, 기도가 응답된다. <마5:23-24>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용서할 때 그 사람의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를 잘 하고 계셨는데, 어떤 다른 목사님이 같은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몇몇 교인들을 빼내어 갔다. 그것 때문에 기존에 목회를 하시던 목사님의 사역이 힘들어졌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새로 교회를 개척한 목사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늘 마음에 분을 품고 사역을 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안타깝게도 목사님의 목회가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쓰고 수고를 해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님이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다가 바로 우리들이 읽은 주님의 용서에 관한 말씀을 읽게 됐다. 그때 이 목사님이 성령의 음성을 들으셨다.용서하고 화해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신 것이다. 그 다음 날 목사님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오전 시간에 새로 교회를 개척한 목사님을 찾아가서 그 동안 마음에 있었던 미움, 그리고 분노에 대한 모든죄를 그 목사님에게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 목사님 또한 이런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잘못도 용서를 구하며 서로 화해를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다음부터 교회의 하늘 문이 열리면서 치유가 되고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게네스 헤긴’ 목사님의 [인생 승리의 길 사랑]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용서할 때 상처가 치유되고, 그리고 하늘 문이 열려서 하늘의 기업의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6. 말씀을 마무리 한다.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의 비유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왕’이 ‘주인’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종이 임금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기에 기꺼이 종은 임금을 주인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의 기본은 주인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들이 모든 만물의 왕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갚을 길 없는 용서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우리들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종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용서하라”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하루를 살 때, 조건 없이, 그리고 제한 없이, 마음에서부터 용서하시는 삶을 사심으로 여러분의 허물도 용서 받으시고 하늘 문이 열려기도가 응답되시는 복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한다. ▣ 오늘의 기도“하나님,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용서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음으로 내 자신도 용서 받게 하시고, 하늘이 열려 기도가 응답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이전글2025년 고난주간 특새 - 주기도문(5) 25.04.18 다음글2025년 고난주간 특새 - 주기도문(3) 25.04.16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