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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부활주일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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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4-04-0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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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디아서2:20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참된 의미

 

1.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제자들에게 보이셨고, 그리고 40일 동안 500여 제자들과 동행하시기까지 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었다고 하면 오늘날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들통 났을 때 참모진들이 모여서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철썩 같이 비밀을 지키기로 서로 약속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말 맞춘 것이 드러났고,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은 감옥에 갔으며  닉슨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고 하면 오래 가지 않아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진실이 드러났을 것이고, 그러므로 더 이상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증거는 없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톰 라이트’ 목사님은 말하기를 ‘빈 무덤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꾸며 낸 것이 아니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거나 본 일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극적인 회심을 체험했고 아무리 죄책감이 컸고 또는 용서에 감격했고, 아무리 장시간 성경을 파고 들었어도 이것을 지어냈을 리는 없다. 이를 부인한다면 역사 연구를 떠나 자기만의 공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입니다. 

 

2.

 

오늘은 우리들 모두가 다시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와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또 인간은 죄를 지었다고 하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 불의한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 곧 죄의 심판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인이 죄를 용서 받으려고 하면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히9:22> 말씀을 보면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 흘림이 있어야지만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구약시대는 짐승이 대신 피 흘리고 죽는 것으로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피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짐승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짐승으로 드리는 속죄 제사는 다시 죄를 범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반복해서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짐승으로 제사 드리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속죄 제사를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제사는 우리의 죄를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완전하게 깨끗하게 한 제사입니다.  

이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히10:17>에서 말씀하기를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이미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양털과 같이 깨끗하게 하셨음을 믿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모든 죄를 용서하심) 

 

또 한 가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종에서 자유케 됐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구속’(救贖)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죄인을 감옥에 구속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구원할 구’(救), ‘속죄할 속’(贖)자를 써서 ‘값을 치루고 사다’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의 또 다른 의미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죄의 종살이를 했던 우리들을 사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Set me free!’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할 필요가 없는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죄로부터 해방 받은 사람들입니다.(남편이나 부인에게 해방되는 것을 좋아할 것이 아니라, 또 빚더미에서 해방되는 것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예수 피로 죄에게서 해방 됐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주 말씀 하시길 죄 사슬 끊겼네 우리 자유 얻었네 할렐루야/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우리들은 이미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구속 받아 자유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따라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죄가 나를 다시 얽어 매려고 하면 그때 우리는 예수 십자가를 보여주며 과감하게 자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가 우리들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입니다. 

 

셋째가 중요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갈2:20>에서 이르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 만의 죽으심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 툭하면 성질 부리고, 자기 밖에 모르고, 라떼,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고 하면서 예전에 죄를 따라 죄에게 복종하고 살았던 우리의 옛 사람 역시도 십자가의 예수님 안에서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내가’를 버릴 때 내가가 사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왜 인생이 힘들고 고달픈 것입니까?

왜 가정에 불화가 있습니까?

왜 사람들이 나를 꺼려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다 내가가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내가’가 산 사람입니다. 

‘내가 했습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이 말씀의 의미는 그런 ‘내가’가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씨앗은 캄캄한 흙 속에 떨어져 죽지만 그럴 때 비로소 생명이 번식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코의 말과 같이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남편들은 될 수 있으면 아내 앞에서 말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죽었다’ 하고 사는 것이 쫓겨나지 않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농담으로 말씀 드렸지만, 중요한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 나의 옛 사람도 죽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세번째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담긴 영적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에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에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에서 죄인이었던 우리의 옛 사람도 죽었습니다.

 

3.

 

부활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의 예수님 안에서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에서 우리들 역시도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6:3-8>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

성도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나의 옛 사람이 죽었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새 생명을 얻어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 모두가 예수님의 새 생명을 얻어 사는 것 때문에 <고후5:17>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새 것이 되었습니다.

 

한국 영주대장간 ‘석노기’ 대장장이가 만드는 호미가 이 미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라고 합니다. 

아마존에서 23불로 팔리고 있는데 원예 부분 판매 순위 10위 안에 든다고 합니다.

다큐를 통해서 석장인이 호미를 만드는 것을 봤습니다. 

재료를 폐차장에 버려진 화물차 판스프링을 씁니다. 

낡은 쇠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천도가 넘는 화로 속에 집어 넣어서 벌겋게 달구어지면 그때 꺼내서 망치로 두들기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찬물에 넣고, 다시 뜨거운 화로 속에 넣었다가 꺼내서 호미를 만드는데, 그렇게 해서 마침내 쓸모없어 폐차장에 버려졌던 쇠가 미국에서도인기있는 호미로 재 탄생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나의 옛 사람이 죽었고, 부활에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참된 의미입니다. 

<찬493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누리며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안에 살리라’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얼마나 사랑 받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인지, 내가 얼마나 새 사람이 되었는지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하늘이 열리고, 참된 기쁨으로 충만해서 힘을 얻어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영생의 복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4.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 안에서 나의 옛 사람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의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롬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 얻어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신다고 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이유는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자신의 능력으로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 마귀의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런 부활의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게 되면 그 사람은 넘어지게 하려고 한 길로 왔던 마귀 사단 조차도 일곱 길로 쫓겨가는 역사를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대 귀신까지도 물리치신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이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부활의 예수님이 거하신다고 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가 싸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믿음이 사단 마귀 권세를 이기고 빼앗긴것들을 다시 다 찾아오는 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소망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제레미 트릿’이라는 목사님이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극빈 지역 키베라를 방문했습니다.

복개되지 않은 하수구를 따라 그 지역으로 걸어가는데, 나뭇조각과 마른 흙으로 지은 집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가 벌거벗은 채로 하수구 바로 옆에 있는 진흙탕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어느 열 두 살 소녀를 가리키며 매춘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트릿이 망연자실해 있는데 저만치 목적지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판잣집 같은 건물에 들어서니 안에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70명쯤 되는 사람들이 ‘스와일리어’로 목청껏 하나님을 찬송하며 팔을 들고 예배를 했습니다. 

눈물과 웃음과 기도와 찬송의 도가니였습니다.

그토록 악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엇이 이런 소망과 기쁨을 줄 수 있을까?

트릿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 가난한 빈민가에 하나님 나라가 임해 있었다. … 아직 … 하나님의 장래의 약속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여태 내가 보았던 가장 참혹한 고생과 상처의 한복판에 분명히 그 나라가 있었다.’

어떻게 절망스러운 환경에서도 찬송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부활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지금 현재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있는 사람은 부활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가 기꺼이 십자가를 감당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 장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늘 그것을 궁금해하던 한 단골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 봐요?”

“천만에요. 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내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기쁘게 사실 수가 있으십니까?”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 이랍니다.”

“3일의 비밀이라니요?”

“3일의 비밀이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고 3일을 기다리는 것인데, 이는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안에 부활의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경우에도 소망 가운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 일도, 봉사도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신다’는 믿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지치지 않는 힘과 능력을 얻어 감당하는 것만이 사람의 평가 개의치 않고 도리어 그 사람의 삶에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 때문에존귀와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믿음이 아니라 내가 감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기분 좋을 때는 날라라, 룰라라, 신나게 일을 하다 가도 수가 틀리면 당장에 집어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다 그와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주님으로 자신들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었을 때는 그들 모두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하는 자들이 됐었습니다. 

그렇지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았을 때는 제자들 모두가 ‘내 안에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이를 믿었을 때 그들은 놀라운 사역자들이 됐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내 안에 모든 병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이 계시지!’ 그 믿음으로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믿음을 사용하자, 병든 사람들을 치유 받는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으시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 때문에 그들은 귀신을 향해서도 과감하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 명할 수 있었고, 그러므로 내어 쫓겨나가는 역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도 다시 살리는 구원의 역사를 행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피로 의롭게 된 성도는 오직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신다고 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레베카 피펏’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의 신이다. …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권력에 지배당하고, 인정 받으려는 사람은 자신이 비위 맞추려는 사람에게 지배당한다.’

그럴 때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지배를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과 같이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의 그 사랑, 그 은혜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의 친 외할머니는 6.25한국 전쟁 때 아들을 살리기 위해 불 가운데 뛰어드셨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아들이 간식을 사달라고 해서 앞세우고 나가셨다가 비행기 폭격에 어린 아들의 몸에 불이 붙자, 외할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불길 속으로뛰어드셨다가 죽으신 것입니다. 

<아8:6>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이 말씀과 같이 자식에 대해서 자신의 생명을 초월한 사랑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겠지만 그런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저의 어머니께서는 말로 표한하기 힘든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식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길러내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아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고, 또 노예로 팔려서 고통스런 종살이를 했습니다. 

더더욱 그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모함을 받아 살아나올 가망이 전혀 없었던 감옥에 던져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어느 곳에도 그가 낙심했다거나 아니면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 건짐 받았고, 뿐만 아니라 온 천하만민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귀와영광의 사람이 됐습니다. 

요셉이 엄청난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받은 사랑 때문 이었습니다. 

야곱은 다른 자녀들보다 특히 요셉을 사랑해서 채색 옷을 입혀 주었다고 했습니다.

빨갛게 물들여진 옷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고난 가운데서도 늘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지난 성금요일,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맞으셨고, 만신창이와 같이 찢겨진 몸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고,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야곱만 요셉에게 붉게 물든 채색 옷을 입혀주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물든 사랑의 채색 옷을 저와 여러분에게도 입혀주신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형통함이나 세상 것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잘되면 함께 기뻐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떤 어려움도 그 사랑으로 이기고, 도리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것입니다. 

 

‘토니 캄폴로’ 목사님은 젊은 시절에 학생들 상담하는 상담사역자로 일을 했습니다.

이 분의 사역가운데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신앙 캠프에서 뜨거운 부흥의 역사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부흥의 발단은 ‘빌리’라고 하는 뇌성마비 학생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뇌성마비 빌리를 흉내 내며 놀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흥은 그런 ‘빌리’를 저녁 기도회 인도자로 세우면서 일어나기 시작됐습니다.

매일 저녁 각 숙소에서 기도회를 열었고 기도회 인도를 아이들에게 맡겼는데 그날은 ‘빌리’를 인도자로 내세운 것입니다. 

진짜 기도회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빌리’의 더듬는 모습을 보려고 장난으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기도회가 시작되어 빌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사랑해요… 나도…예…수…님을…사랑…해요.”

이 짧은 말을 하는데 무려 2-3분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웃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빌리’의 말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은 오랜 시간 조용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곳에 모인 학생들이 모두가 자신도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학생들의 신앙부흥을 위해 캠프에서는 많은 예산을 들여 유명한 운동 선수나 유명인사들을 초청해서 간증을 들었어도 그들이 못한 일을 예수님의 사랑을확신하고 용기를 냈던 뇌성마비 소년이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까지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5.

 

결론의 말씀입니다. 

팀 켈러 목사은 [부활을 입다]라는 책에서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의 세상은 계몽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낙관론이 지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우리에게 신이 필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인류가 곧 신이다. 바로 우리가 미래의 희망이고 신이다’라고 하는 엄청난 말을 한다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항공 기술이 도리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의 이유가 됐던 것과 같이, 또한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세상이 테러로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이 미래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엘피다’는 영어로는 ‘hope’ ‘희망’ 이지만 본래는 ‘깊은 확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지금과 같은 어두운 세상과 고난 가운데서도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희망의 구심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있기 때문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만이 우리의 참된 희망이십니다. 

부활의 예수님 안에 참된 희망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재물과 권력을 보는 관점, 일하는 태도 모든 것들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B.C. 49년에 루비콘 강을 건넌 일을 믿으나 믿지 않으나 내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고, 그리고 오늘 이 시간도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믿는 사람의 인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송두리째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심과 그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들 모두가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역사를 경험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고 또한 존귀한 믿음의 사람들로 세움 받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주님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심과 그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들 역시도 살아 계신 주님을 경험하고 영광이 되는 믿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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