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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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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47회 작성일 24-03-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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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30.2024)

 

▨ 사무엘하15:24-37

십자가가 승리입니다<삼하15:24-37>

1.

 

다윗과 신복들은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급히 피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 제사장 사독과 레위인들이 다윗 성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 내어옵니다. 

하지만 다윗은 제사장 사독에게 명하기를 하나님의 궤를 도로 성으로 메어 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하나님을 업신여겼던 제사장들입니다.

블레셋과 싸움에서 패한 이스라엘은 홉니와 비느하스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메고 나가면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했고 법궤를 빼앗겼으며, 홉니와 비느하스 역시도 전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다시 성으로 메어가라고 한 것은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인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 다윗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고, 법궤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대신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두 아들들과 더불어 성에 남아 되어지는 일들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윗은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백성들과 더불어 감람산 길로 올라갑니다. 

그럴 때 어떤 이가 말하기를 전략가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아히도벨이 대단한 전략가였기 때문에 다윗은 <삼하15:31>에서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구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르렀을 때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무릅쓰고 다윗을 맞으러 나옵니다. 

다윗은 그런 후새에게도 이르기를 “성으로 돌아가라” 하면서 압살롬에게 “이제부터는 압살롬의 종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나를 위해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되어지는 일들에 대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통해 자신에게 알려 달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말씀은 후새는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고, 압살롬도 들어가게 됐다는 말씀입니다. 

 

2.

 

이 이후에 벌어진 일을 살펴봐야 오늘 말씀을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후의 말씀을 보게 되면 압살롬은 전략가 아히도벨에게 어떻게 행할 모략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럴 때 아히도벨은 대단한 전략가 답게 다윗을 죽일 수 있는 기가막힌 모략을 알려 줍니다. 

첫째는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동침을 해서 따르는 자들에게 힘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병사 일만 이천을 택해서 그 밤에 다윗의 뒤를 따라 피곤할 때 엄습을 해서 따르는 자들이 도망하게 하고, 다윗 왕만 죽이게 되면 백성들이 다 압살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이대로 했으면 다윗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다윗의 친구, 후새에게도 전략을 묻습니다.

후새는 당연히 아히도벨의 모략이 실패하고 반대로 다윗에게 도움이 되는 전략을 말합니다.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자들은 전쟁에 능한 용사들이기 때문에 압살롬이 모든 군사들을 데리고 직접 전쟁에 나서서 기습 공격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윗이 어느 성에 들었든지 줄로 그 성을 강으로 끌어넣어 돌 하나도 남게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후새는 압살롬을 높여 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에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이 아히도벨의 모략보다도 후새의 모략을 더 좋게 생각해서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는 곧 후새는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들로 하여금 상황을 다윗에게 알려 급히 요단강을 건너게 합니다

그런 반면 압살롬의 전략가,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을 매고 죽습니다.  

이후 압살롬은 후새의 말 그대로 직접 전쟁에 나섰고, 압살롬의 이만의 병사들이 다윗의 군대 장관들, 요압과 그리고 아비새, 또한 가드 사람 잇대가 이끄는 부대의 공격을 받아 죽습니다. 

압살롬 자신도 상수리 나무 가지에 머리카락이 걸려 매달린 것을 요압이 창으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고, 그리고 그 부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압살롬은 죽고 반란이 제압되어 다윗은 안전하게 다시 다윗 성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여러분,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리고 부활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는 그림자와 같은 말씀입니다.  

다윗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속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피신하는 입장에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하나님의 법궤를 소유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하늘의 모든 권세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법궤를 담당하는 제사장들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지원군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예루살렘성으로 다시 돌려 보내고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만을 구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감란산 길로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올라갔습니다. 

거기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말과 같이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자신의 기세를 자랑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압살롬의 반란은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그렇지만 종국에는 실패해서 아히도벨은 물론 압살롬까지도 사망을 당하게 됐고,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위를 회복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수 마귀는 가롯 유다를 미혹해서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게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관원들, 그리고 장로들이 그런 예수님을 붙잡아 빌라도에게 고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채찍 맞는 고통에 넘겨 지셨고, 그리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신 채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만 보면 사단 마귀가 승리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예수님을 사망 가운데 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천하만물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 고백하게 하시는 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다윗으로 승리케 하셨던 것과 같이 아무런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 십자가를 지신 것이 패배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 십자가로 인해 오히려 승리하는 것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4.

 

여러분, 오늘 말씀 역시도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믿음의 삶에는 저마다 뜻하지 않은 십자가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경험될 수 있는 십자가는 때론 마치 원수 마귀가 이기는 것 같게 느껴지고 반대로 내 자신으로 하여금 처절한 패배자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다윗의 모습과 같이 또한 아무런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과 같이 기꺼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믿음으로 감당하게 되면 그 십자가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고 또한 조롱 받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믿음의 삶을 사는 내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나타내는 승리의 사건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전1:1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저는 이런 경우 교부 마카리우스의 유명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마카리우스가 있던 수도원 근처 마을의 한 처녀가 부정하게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처녀는 자신이 처벌 받는 것을 두려워서 수도사 마카리우스가 아이를 갖게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격분해서 마카리우스를 잡아다 심한 매질을 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한 순간에 존경 받는 수도자에서 경멸 당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카리우스는 “아닙니다! 나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항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카리우스는 마을 사람들이 때리면 때리는 데로 매를 맞았고, 침 뱉음을 당하면 침 뱉음을 당하는 대로, 조롱을 당하면 조롱 당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당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카리우스는 그렇게 폭력과 멸시, 조롱을 묵묵히 감당한 것 만이 아니라, 이후 자신의 수고를 통해 얻어진 물질로 아이를 가진 여인을 돌보기까지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분명 마카리우스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인이 아이를 출산할 때가 됐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인을 아이를 낳지 못하고 계속해서 엄청난 산고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여인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아이의 아버지는 마카리우스가 아니라, 자신이 다른남자와 부정한 일을 해서 가진 아이라고 실토를 했습니다. 

여인의 말을 마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늦게라도 마카리우스를 찾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마카리우스는 이미 이런 상황을 알고 조용히 마을을 떠나 수도원으로 돌아가 기도생활에 전념합니다.

마카리우스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말미암은 진정한 승리인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에 있는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믿음으로 감당하게 되면 그 십자가는 수치나 조롱거리, 혹은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살게 하시는 부활의 승리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칼이나 군사력이 승리가 아니라 십자가가 승리임을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제자들인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9:23-27>

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고 기꺼이 내 몫에 있는 십자가를 감당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삶은 마침내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5.

 

내전으로 많은 수난을 당했던 수단 당카족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아프리카 수단에 일어난 내전으로 끔찍한 학살이 같은 동족 간에 일어났습니다. 

수단의 당카 족이라는 부족은 정부군에게 무자비하게 유린을 당했습니다. 

100여구의 시신이 뒹굴고 그것 때문에 마을에는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남자, 여자, 아이들, 심지어 가축까지 몰살을 당했습니다. 

여자들은 겁탈을 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도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집들은 불에 태워졌고 모든 것들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당카 족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죽음의 공포 뿐이었습니다. 

거기다 더욱 두려운 것은 또 어느 때 AK소총을 든 괴한들이 들이닥쳐 또 다른 겁탈과 학살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침략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엄청난 상처들 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럴 때 당카족 여인들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노예로 잡혀갔고, 가정은 박살이 났으며, 자신들도 겁탈을 당한 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상황이었지만, 여인들이 절망을 딛고 일어선 것입니다. 

여인들은 먼저 땅바닥에 있는 막대기들을 주워 십자가를 만들고 그것을 땅에 박는 일을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잃어버린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표시일까? 

아니었습니다.

쓰러질 듯한 몸과 피맺힌 가슴으로 땅에 박은 그 십자가 모양의 막대기들은 그녀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믿고 섬기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아신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겪는 지금의 이 고통을 세상은 알지도 못하고 또 도와 주지도 않지만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은 자신들의 아픔을 알고 계시고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승리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마침내 승리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생명의 말뚝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십자가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이 아니고 반드시 부활이 있음을 믿는 부활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십자가가 진정한 승리임을 믿는 믿음을 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게 하심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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