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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고난주간 가상칠언 묵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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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27회 작성일 24-03-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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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架上七言)  시리즈3

 

▨ 요한복음 19:26-27

26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진나라 환온 장군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 폭이 좁은 협곡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병사 하나가, 마침 늘어진 덩굴줄기에 매달려 장난을 치고 있는 새끼원숭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이를 본 어미 원숭이가 큰 소리로 슬피 울면서 배를 쫓아갔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배는 계속해서 며칠을 강을 따라 갔는데, 어미 원숭이도 새끼 원숭이를 따라 수백 리 길을 쉬지도 않고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배가 강 기슭에 닿았을 때 어미 원숭이는 재빨리 새끼 원숭이가 있는 배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어미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심한 울음을 울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놀란 환온은 즉시 원숭이의 배를 열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다 끊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새끼에 대한 어미 원숭이의 절박한 마음이 창자까지 끊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유를 알게 된 환온은 대노를 했고, 장난 삼아 새끼 원숭이를 잡았던 병사를 매질해서 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죽은 어미 원숭이를 잘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어미 원숭이의 장이 끊어지는 듯한 지극한 사랑에서 ‘단장지애’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짐승보다 더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오래 전 자식을 잃은 한 교민을 봤더니 자식을 잃은 것 때문에 얼굴은 항상 슬픔으로 가득했고,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아들 묘지를 찾아서 슬픈 마음을 토로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것이 자식을 잃었을 때 안타까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그 곁에 모친 마리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 십자가에 못박힌 자식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고통이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런 모친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며 어머니를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는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때부터 모친을 자기 집에 모셨다고 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는 말씀과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하시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세번째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더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자식을 잃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 혹은 아픔으로 인해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 별일 없고,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아 보여도 깊이 삶을 들여다 보게 되면 다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 생각하게 되면 낙심도 되고 걱정도 되는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여러가지 일들 가운데서 우리들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이시고, 예수님께서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고, 또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보화와 같이 함께 하시는 것 때문에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주님으로 부터 힘과 능력을 얻어 이기며 계속해서 믿음의 소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 할 모친 마리아에게 위로가 필요 하듯이,  우리 주변에는 사단 마귀에게 강도 맞아 예수님을 빼앗긴 것 때문에 외롭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이 그런 이들에게 말만이 아니라 작더라도 실제적인 사랑과 진실된 섬김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충만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정성껏 식사를 챙겨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금껏 별로 신앙 생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어떤 분이 교인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고는 좀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음을 떠나 나를 생각해 주는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제자 된 우리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사랑의 일을 감당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부탁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인가?

크게 두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을 볼 때 남으로 생각지 않고 내 가족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모친께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만 아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 역시 동일하게 자녀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그때부터 모친을 자기 집에 모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님의 모친을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같은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왜 저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곧 내 형제요 자매요, 그리고 부모와 자녀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픔을 곧 내 아픔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고,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가운데 예수님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을 찾아 오셨을 때 하신 말씀은 참 충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향해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단 한번도 본적도 없었고 더더욱 예수님에게 한대의 채찍도 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향해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의 고통을 곧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제자들은 곧 그의 몸의 각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 몸일 때 가족이 외롭고 힘든 상황에 있을 때 모른 척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우리들의 믿음의 눈이 열려 우리 서로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아픈 사람들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 한 가지는 나 자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아 빚진 자라고 하는 것을 늘 잊지 않아야 하는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저자 요한은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하셨던 제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는 것입니다. 

제자 입장에서 보면 그 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랑 받는 제자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제자들입니다.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었던 레이 브레넌의 어머니가 브레넌 매닝에게 “어떻게 이 보다 더해 줄 수 있겠니!”라고 소리쳤던 것과 같이 저와 여러분들 모두는 예수님으로부터 이 보다 더한 사랑은 없다고 할 만큼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큰 빚을 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빚은 갚을 때까지 늘 부담입니다. 

빚은 다 갚아야 지만 홀가분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빚과 같은 것입니다. 

빚은 부담스럽더라도 꼭 갚아야 하는 것과 같이 사랑은 부담스럽더라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오늘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말씀, 곧 내게하신 말씀으로 마음에 받으셔서, 오늘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우리 주변의 마음의 상처를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사랑을 실천하심으로 갚으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나의 믿음의 눈이 열려지게 하셔서 내 주변의 상처 입은 심령들을 찾아 한 가지라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하심으로 나를 위해 생명까지 주신 예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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