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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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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03-2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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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23.2024)

 

▨ 사무엘하15:1-23

 

은혜에 대한 정반대의 두 사람

 

1.

 

오늘 본문은 다윗의 아들, 그술에서 돌아왔던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백성들이 송사 해결을 위해 다윗 왕을 찾을 때 중간에 압살롬이 재판관이 되어 일을 처리를 함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을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을 갚겠다고 하면서 아버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7년 반 동안 다스렸던 헤브론으로 가서 왕이 되고자 하는 본격적인 반역행위를 합니다. 

그럴 때에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까지 책사로 끌어들이자 많은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을 따르게 됐다고 했습니다.

 

압살롬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아들입니다. 

어쨌든 그는 배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형 암논을 죽인 죄인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런 아들 압살롬을 긍휼이 여겼습니다. 

그와 같은 다윗의 마음을 알았던 요압 장군이 방법을 써서 결국에는 다윗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게 했던 아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어도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볼 수 가 없었지요. 

그럴 때도 요압 장군의 중재에 의해 압살롬은 아버지를 대면할 수 있었고, 그렇게 왕과 왕자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 다윗이 압살롬에게 베푼 은혜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압살롬은 전보다 더 아버지 다윗을 잘 공경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왕이 되고자 반역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가 된 것입니다. 

 

2. 

 

반면에 압살롬과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잇대라고 하는 가드 사람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돌아가자 다윗은 신복들에게 말해 궁을 지키기 위한 후궁 열 명만 남기고 급히 도망을 합니다. 

그렇게 신복들과 더불어 피신을 할 때, 성경은 <삼하15:18>에 말씀하기를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인이 왕의앞으로 진행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왕을 호위했다는 뜻입니다. 

가드 사람 잇대가 자신을 따르는 것을 본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그러자 잇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삼하15: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사생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이 말은 자신이 죽든지 살든지 다윗 왕이 있는 곳이라고 하면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는 맹세였습니다. 

‘잇대’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곁에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잇대는 늘 다윗 곁에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따르기로 결심한 잇대를 본 다윗은 “앞서 건너 가라”라고 하면서 진의 선두에 서게 합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가드 사람’이라고 하면 이스라엘과 철 천지 원수와 같은 블레셋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다윗을 따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잇대가 다윗에게 고백한 말은 마치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한 말과 매우 유사합니다. 

시오머니 나오미는 자신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자 과부가 된 모압 이방 며느리 오르바와 룻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신과 자기들의 백성들에게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에게 이렇게 간구합니다. 

<룻1:16-17>

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가드 사람 잇대가 그런 경우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잇대는 몰살 당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선두에 서서 다윗 왕을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 됐는가?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도 역시 다윗으로부터 죽는 한 있더라도 끝까지 따를 수 밖에 없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잇대가 다윗을 따르게 된 이유를 성경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잇대는 블레셋 5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가드에서 어떤 일로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그 땅을 떠나야했던 것 같습니다. 

정처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 다윗은 그런 잇대를 받아 주었던 것입니다. 

그 은혜가 그에게는 너무 컸습니다. 

그 결과 가드를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잇대는 끝까지 다윗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3.

 

오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은혜를 받았을 때 은혜 받은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살인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다윗으로 인해 모든 아들의 지위, 곧 왕자이 위가 회복된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받은 은혜를 따라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삼하15:8> 말씀을 보면 실제로 압살롬은 그술로 도망가서 있었을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면 야웨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서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모든 것들이 회복되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점점 은혜를 잊어버렸고 오히려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구테타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압살롬과 유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가 어려울 때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심한 중병에 걸려 죽게 됐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럴 때면 “하나님, 이 병을 고쳐 주시면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간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셔서 건강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아 건강하게 되었다고 하면 서원한 그대로 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침 받아 건강하게 되면 마음이 달라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언제 죽을 만큼 아팠는가 하는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자신이 인생에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마음대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 보다도 어쩌면 제대로 된 은혜를 받지 않고 가짜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반면에 잇대는 이방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달랐습니다. 

잇대에 대한 다윗의 말을 보면 ‘너는 어제 왔고’라고 했습니다. 

잇대는 다윗으로부터 은혜를 입어 다윗 편에 있게 된 것이 며칠 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다시 블레셋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권력의 위기를 맞아 도망가야 하는 초라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얼마든지 다윗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대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한 다윗 왕을 목숨을 다해 지키고 끝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막 은혜를 받았을 때 그때 오히려 많은 믿음에 대한 도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기로 했지만 옛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문제일 수 있고, 또 세상 것이 좋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했을 때 세상 적인 것들을 끊어야 하고, 반대로 영적 성숙을 위해 예배를 비롯해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좀 힘든 일입니까?

잇대는 다윗 편에 있은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지만 목숨을 걸고 끝까지 다윗을 따르고자 했던 것과 같이 우리들 역시도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기로 결심했다고 하면 배신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끝까지 그 뜻을 따라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의 참된 믿음의 삶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

 

반역을 했던 압살롬과 그리고 끝까지 다윗을 따랐던 잇대, 이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무엘하> 말씀을 보겠지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반역을 일으켰던 압살롬은 계획이 틀어져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노새를 타고상수리나무를 지날 때 머리털이 걸려 노새는 빠져나가고 나무가지에 매달린 것을 요압이 가서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요압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압살롬은 아이러니하게도 요압의 창에 의해 찔려 죽은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자기가 왕되는 교만한 삶은 결국 사망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머리 털이 자랐다?

이 말은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의 생각은 곧 사망이라고 했던 것과 같이 결국 압살롬은 사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반면에 잇대는 그의 고백과 같이 끝까지 다윗을 따르며 다윗을 위해 싸우는 충성스런 장군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만났다고 할 때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그 감사와 감격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과 같이 힘들고 어렵게 살 때는 하나님 찾아서 도움을 간구하다가 먹고 살만큼 되자 마치 자신이 그 모든 일을 이룬 것처럼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제쳐 놓고 자신이 왕이 된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조국의 현실이 그와 같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어렵게 살 때는 교회들마다 하나님을 찾아 도움을 간구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요한 나라가 되자 지금은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줄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은혜를 받은 참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더 크고 좋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5:5b>에서 이르기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도 <약4:4b-10>에서 이렇게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4 …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5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며 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받으신 하나님의 은혜 위에 은혜가 계속해서 여러분의 삶에 부어 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희미해져 갔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기억하게 하시고, 은혜를 보답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각오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그 은혜와 능력으로 더욱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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