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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18) - 주일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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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24-03-18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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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15.2024)

 

▨ 사도행전9:19b-31; 시편121:1-8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1.

 

인생은 누구나 도움을 받으며 사는 존재입니다.

먹고 사는 것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농사하는 농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 스테이크나 삼겹살을 먹을 수 있기 위해서는 축산업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생선 먹고싶으면 어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벌거벗고 다닐 수 없어 옷이 필요하기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여자 역시도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려고 하면 네비게이션이 없이는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핸드폰이나 AI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의 도움이 필요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품앗이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2. 

 

오늘 말씀도 보면 예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택함 받은 사울이 복음을 전할 때 여러 도움을 받는 것을 봅니다.  

얼만 전 까지도 제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파하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이에 사울은 더 힘을 얻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명해서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를 공모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졌고,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킬 때에 사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성에서 달아 내려 위험을 모면하게 됩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려고 했지만 다 두려워하면서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에 ‘바나바’라고 하는 제자가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그리고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 뿐만 아니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했던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루살렘에 출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 만이 아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서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을 하자 그들 역시도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도 형제들이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안전하게 보내게 됩니다. 

사울의 복음 사역은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많은 도움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울을 쓰시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사람들을 통해서 사울을 도우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 성령의 위로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됐습니다. 

 

3.

 

이런 내용과 더불어 오늘은 <시121편>의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삶 역시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다윗은 <시121:1>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고 합니다. 

다윗은 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 인생의 모든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고 한 것은 산의 장엄함을 보기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도 그와 같은 산을 지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기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함 이었습니다.  

 

지난 주에 눈이 참 많이 왔습니다. 

눈이 많이 온 것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무 가지에 쌓인 눈은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입니다.

오래 전 예수마을교회에서 청년들과 록키 마운틴 자락에서 캠핑을 했는데,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경이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의 신비로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덴버제일 감리교회 교우들은 어디를 가도 나이를 모를 정도로 다들 젊고 아름다우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거기다 덴버에서 음식을 잘한다고 하는 모든 궁중 요리사들이 다 모인 교회가 덴버제일 감리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놀랍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은 더 놀라운 일입니다. 

<찬송>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라는 찬송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내 자신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의 피로 구원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는 ‘포이에마’(ποίημα) 입니다. 

이 말은 ‘솜씨’ ‘창조’라는 의미 외에도 ‘작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만드신 명품 중의 명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도움은 그와 같은 천지를 지으신 야웨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4.

 

다윗은 <시121편>의 여덟 절의 짧은 시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하나님을 지키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21: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시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울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뿐만 아니라 바나바와 같이 사람을 붙여 주시고 그리고 피할 길로 인도하시는 것과 같이 지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엇을 지켜 주신다고 말씀하시는가?

크게 세 가지를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낮의 해와 밤의 달의 피해로부터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시121:5-6>

5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중동 사람들이 머리에 ‘터번’을 쓰는 이유는 해의 뜨거움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중동은 또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사막 추위가 있습니다.

그런 추위로부터 보호 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우리들이 삶을 살 때 밝은 대낮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혹은 어두운 밤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시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어려움이 없고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이야 말로 귀한 복입니다.

이 때문에 ‘야베스’는 <대상4:10>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 하셨더라’

하나님께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구했더니 하나님께 그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질병의 환난을 당하지 않도록 건강을 지켜 주시고, 가정을 평안으로 지켜 주시고, 상터나 직장의 일을 형통으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시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러분,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요삼1:2>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원하노라’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할 때 그 사람이 감당하는 모든 일들도 형통케 되고 뿐만 아니라 육체 마저도 희망에 거하는 강건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낙심하고 믿음에서 멀어지게 되면 원수 마귀에게 휘둘리는 안타까운 삶을 살고 그러다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소중한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지켜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121:3-4>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 

4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야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실 때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은 두 번 반복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확고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피곤한 상태로 편안한 곳에 있게 되면 금새 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 조시는 법도 없으십니다. 

우리들이 지킴을 받기 위해 24시간 경비원을 고용한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재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것 전혀 받지 않으시고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 지켜 주시는가?

<시121:8> 마지막 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떠나고 또 늙고 다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들과 늘 함께 하시면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들이 이렇게 예배 드릴 때만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든지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출입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는 복을 받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믿음이 되어야 하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들을 지켜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으셨던 독생하신 아들의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하나님께서 주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내 사울이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사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시고, 또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 되심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에 그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역시도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되시고 또한 구원자 곧 그리스도가 되심을 전하는 믿음의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로 하여금어떤 어려움이나 환난을 당한다고 해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하시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건강을 지켜 주시고, 사업과 직장을 형통함으로 지켜 주시고, 모든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나 혼자, 나 만을 위한 인생을 살라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또한 지켜 주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복음을 전하는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미주연회 중남부 지방 지방회를 우리 교회에서 열렸었습니다.

지방화 개회예배 설교 시간에 감리사님께서 우리 덴버제일감리교회의 부흥을 꿈꾸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덴버제일 감리교회가 덴버의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혼들을 구원하고 그것 만이 아니라 믿음의 다음 세대를 준비해서 이 나라와 세계를이끄는 일꾼들이 있는 교회되기를 소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일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 일이 우리의 현실로 경험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들은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울과 마찬가지로 지켜 주시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5.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도움을 받으며 사는 복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121:1-2>

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늘상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이 말씀은 산을 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움이 바로 그와 같이 장엄한 산을 만드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도움을 받아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나 혹은 돈 혹은 사람 바라보게 되면 실족하고 실망하는 일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자신의 단 하나 밖에 없으셨던 독생하신 아들을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말씀이 산 자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산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 보라는 것과 같이,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대 주님을 따르려거든] 책의 작가 ‘브레넌 매닝’은 자신의 이름이 ‘브레넌’이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  ‘레이’라고 하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둘은 항상 함께 다니며 뭐든지 같이 했는데 차도 같이 사서 타고 다니고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는 같이 데이트도 했고, 학교도 함께 다녔습니다. 

심지어 군대도 같이 갔고, 한국 전쟁에도 같이 참전했습니다. 

어느 날 밤, 참호에 앉아서 브레넌이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레이는 초콜릿을 먹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때 참호 안으로 수류탄 하나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레이가 브레넌을 미소 띤 얼굴로 쳐다보더니 먹고 있던 초콜릿을 던져버리고 곧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었습니다. 

레이의 희생 때문에 브레넌은 살 수 있었습니다. 

브레넌이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성자의 이름을 정할 수 있었는데 그때 ‘누구의 이름으로 할까?’ 하다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친구 ‘레이 브레넌’을 따, ‘브레넌’이라고 한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 브레넌이 레이의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밤 늦게까지 서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브레넌이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레이가 저를 사랑했을까요?”

그러자 그 순간 브레넌 여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Jesus Christ, 도대체 그 보다 뭘 더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머니의 말은 당연히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귀중한 생명을 준 것이 아니겠니?”라고 하는 반문이었습니다.

그때 브레넌은 다시 한번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준 친구의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친구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은 영웅 심리가 발동해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또한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들을 자신이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의미이고, 그리고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끼실 것이 없으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랑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시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도와 주심으로 구원의 역사, 기쁨으로 가득한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6. 

 

결론의 말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신 ‘주석중’ 서울 아산병원 교수, 이 분은 대동맥수술 부분에서 명의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살리신 분이십니다. 

이 분의 사망에 대해 많은 의사들과 학생들,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주교수님은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하는 참 신실한 의사셨습니다.

이 분이 수첩에 적어 놓은 영어 기도문이 유족에 의해 공개됐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치유의 과정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들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지만 결국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 우리들에게 새생명 주신 하나님께 하루하루 감사하며 사십시다. 

그리고 어떻게든 예수 전하는 삶을 사십시다. 

그러므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건강과 가정의 평안과 그리고 모든 일의 형통함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영혼을 지켜 주시는 도움을 받아 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는 복된 믿음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복음 전도자로 불러 주시고 뿐만 아니라 늘 함께 하시며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바라보는 믿음 되게 하셔서 승리케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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