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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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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40회 작성일 24-03-1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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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13.2024)

 

▨ 마태복음 8:28-34

28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29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찐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32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 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왜 갑자기 배에 오르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아주 쌘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쳐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얼마나 쌘 귀신에 들린 사람인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덤 사이에서 나왔다는 말과 같이 그들은 늘 무덤에서 지냈던 사람들이었고, 뿐만 아니라 심히 사나워 아무도 그 길을 지나갈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귀신들린 자 둘’로 소개되고 있지만 <마가복음> 5장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한 사람으로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군대 귀신, 곧 많은 귀신이 들린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제어 되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늘 벌거벗은 채로 무덤 사이에서 지냈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갑자기 배에 오르신 이유는 귀신들린 이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의 매임에서 자유케 하시고 온전한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고쳐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이 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생각만이 아니라 거센 풍랑의 반대를 뚫고 찾아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 다음 치유하시는 일을 보면 우리들의 일반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그 무렵 멀리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 것을 본 귀신들은 예수님께 구하기를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라!”라고 허락하셨는데, 그러자 귀신들이 사람들에게서 돼지 떼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돼지 떼들이 비탈길로 내리 달아 바다에 들어가 몰사하므로 그들 두 사람은 온전케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시내에 들어가서 되어진 일을 고하자, 시내의 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왔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도 예수님으로부터 치유 받고자 함이 아니라, 더 이상 돼지 떼가 몰살해서 죽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떠나 달라 요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다시 되돌아오시게 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산술적인 계산하에 물질을 더 추구하는 것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가복음>에서는 돼지 떼의 숫자를 ‘거의 이천 마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천 마리 돼지 떼라고 하면 그 가치를 따질 때 오늘날도 상당한 액수임에 틀림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이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기를 허락하신 이유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이 두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사순절의 참다운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과 같이 사단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범죄하게 해서 사망을 당하게 하려고 옵니다. 

그것도 마치 굶주린 사자와 같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굶주린 사자가 목표를 정하고 은밀하게 다가와 순식간에 먹이감을 낚아채듯 사단 마귀도 은밀하게 우리의 삶에 다가와 한 순간에 그 사람으로하여금 사망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반드시 영적 분별을 갖추어야 하고, 뿐만 아니라 기꺼이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늘 기도 가운데 깨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사망을 당하게 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리고 더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버리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뿐만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셨고, 그리고 병든 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어느 때는 머리 둘 곳 없이 고단한 삶을 사셨고, 또 어느 때는 심히 목마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것 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의 삶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고통과 그리고 사망을 십자가에서 대신 다 담당해 주신 것입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들을 사랑해서 이천 마리의 돼지 떼에게 귀신들이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케 하셨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자신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십자가에서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피로 죄 사함 받았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죄의 매임에서도 자유케 됐으며, 그리고 그 은혜를 믿은 것 밖에 없음에도 우리들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오늘과 같은 귀한 한 날을 선물로 받아 살 때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고 하는 존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조건이 따릅니다. 

어느 때는 율법과 같기도 합니다. 

이는 이, 눈은 눈, 식으로 남이 내게 해주면 나도 하는 식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신 사랑은 아무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 모두가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사실 때 나를 향한 바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기억하시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힘 있는 믿음의 삶을 살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환경을 떠나참 행복을 누리며, 그리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복된 삶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살 때 그 사랑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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