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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11) - 주일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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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41회 작성일 24-03-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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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11.2024)

 

▨ 사도행전9:1-19a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1.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핍박자였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전도자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와 제자들을 핍박하는데 앞장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행8:1,3> 말씀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또한 남녀를 끌어 다가 옥에 넘기면서 교회를 아예 멸절시키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보면, <행9:1-2> 사울이 살기가 등등해서 대제사장으로부터 체포 영장을 받아 다메섹의 남녀 제자들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끌어 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울에게 나타나 구원하시고, 예수를 증거하는 전도자로 삼으십니다.

 

‘고재봉’이라는 사형수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구두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7 개월 동안 군 형무소에 수감됐던 고재봉은 앙심을 품고 자신을 감옥에 넣은 중령을 죽이려고 하다 전혀 다른 일가족 여섯을 살해한 이유로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하게 됩니다. 

그런 고재봉을 당시 [쪽복음]을 판매했던 ‘안국선’ 집사님이 찾아가서 예수님에 대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누구나 다 죄인이고, 그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도 믿기만 하면 그 사람은 용서 받고 그 즉시 강도와 같이 천국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쪽복음] <요한복음>을 읽어보라고 건네 주었습니다. 

하지만 고재봉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랬던 그가 안집사님의 헌신적인 모습에 <요한복음>를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말씀에 빠져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성경을 읽던 어느 날 새벽, 교도소 밖의 교회에서 찬송이 들려졌습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여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고재봉은 이 찬양을 따라 부르며 한 없이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작 자신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것을 통탄하며,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이 나쁜 사람들아, 너무 원망 스럽다. 이 좋은 예수를 왜 진작 내게 알려 주지 않았는가?”

이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다시 태어난 고재봉은 전도자가 됐습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던 다른 죄수들에게 고재봉의 변화된 모습은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고, 고재봉을 그런 죄수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했는데 사형 당하기 전까지 그는 무려 1800여명의 죄수들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 나라에 입성했습니다.

핍박자였던 사울을 변화시켜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사형수까지도 변화시켜 위대한 전도자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게 되면 ‘박효진’ 장로님의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 제목과 같이 예수님께는 고치지 못할 사람이 없으신 분이심을 알게됩니다. 

미련한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자들을 들어 있는 사람들을 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것 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악한 죄인이라도 은혜 부어 주셔서 주의 이름을 증거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핍박자였던 사울이 전도자가 된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를 먼저 찾아와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이 대제사장으로부터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아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을 잡으러 가까이 갔을 때,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자신을 둘러 비추는 것 때문에 땅에 엎드러지게 됐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사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을 핍박하는 사울에게 말입니다.

사울은 유대교에 정통했던 율법학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 자신이 가장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치 유대교를 파괴하려고 하는 이단 집단으로 생각됐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와 그 제자들은 반드시 진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남녀를 잡아 옥에 가두기까지 했고, 심지어는 ‘스데반’ 집사와 같이 돌에 맞아 죽게 하는 일에 앞장서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울에게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 그를 사용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전에 사울과 같이 내 자신이 가장 의롭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나 자신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 자신의 능력을 더 믿고 종교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보고 서슴없이 비판했고, 뿐만 아니라 처지가 어려워지면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애써 예수님과 그 은혜를 부인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시139:7-10>

7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10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할렐루야!

 

사울은 전에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고 더더욱 예수님을 핍박했던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향해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동일하게 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름 만으로도 ‘모세’를 아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형편과 사정, 그리고 우리의 어려움과 필요, 모든 것들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하셨고, 그리고 실제로 우리 인간의 모든 죄와 삶의 모든 수고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에 은혜로 찾아오신 예수님, 여러분의 마음에 늘 모셔서 항상 함께 있으심으로 구원 받는 삶, 영생의삶을 사실 수 있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우리 인생에 찾아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핍박자 사울을 찾아오셨던 것입니까?

그 이유를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신 이유 역시도 구원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고 예수님을 만난 우리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을 특별히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에스더’는 부모를 일찍 여윈 고아였습니다. 

사촌 오빠 ‘모르드개’는 그런 에스더를 데려다가 자기 딸같이 양육해서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무렵에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이 궁에서 신하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부인 ‘와스디’로 하여금 단장하고 나와 미모를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왕후 와스디는 아하수에로 왕이 술에 취해 주책을 부린다고 생각해서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이 때문에 왕후 와스디는 폐위가 되고 전국 각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처녀들을 모아 그 가운데 왕후를 뽑게 됩니다. 

그럴 때 아리따웠던 처녀 에스더 역시도 왕궁에 의해 나가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그 많은 여인들 중에 에스더는 왕후가 됐습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였던 에스더가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된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에스더가 황후가 된 것은 자신의 수고나 능력이 아니었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당시 제국에 떠오르는 스타였던 ‘하만’이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는데 모르드개는 그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아말렉 후손인 것을 알고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모르드개 만이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몰살하는 조서를 아하수에로왕으로부터 받아 수행하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물론 모든 유대인들에게 절대절명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고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에4:13-14>

13…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고아였던 에스더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된 이유는 바로 지금과 같이 위기에 처한 동족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며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사정을 알게 해서 마침내 동족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사용하시기 위해 찾아오셨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과 하늘의 그좋은 기업의 복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자녀 삼아 주신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복음 전해서 우리와 같이 다른 이들도 영생의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969세를 살았던 므드셀라 역시도 마침내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너는 내 은혜 받고 땅에 살 때 뭐하다 왔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자신의 단 하나밖에 없으셨던 독생하신 아들, 가장 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복음을 전해 영혼이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정문 키가 하나 밖에 없어서 집사람이 복사를 하겠다고 받았다가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있을 만한 곳을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복사를 해드리겠다고 하고는 잊어버렸으니 마음에 애가 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키를 찾을 수 없어 locksmith까지 갔더니 적어도 200불이 든다고 대신 자물통을 빼어 오면 25불에 해주겠다고 했답니다. 

절더라 자물통을 빼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찬양기도회가 끝나고 친교를 돕기 위해서 집사람이 앞치마를 두르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거기에 키가 있었습니다. 

키를 발견하고 집사람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살면서 그렇게 얼굴이 환한 것은 처음 봤습니다. 

집에 가는데 내내 키 이야기 밖에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키를 찾았다고 기뻐하는 집사람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 전해서 하나님의 잃어버렸던 한 영혼을 찾게 되면 저보다 더 큰 기쁨이 있겠구나…’

또 한 가지는 ‘잃어버렸던 둘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쫓아 나가서 가슴으로 껴안고 입을 맞추고 그리고 너무 기뻐서 종들에게 좋은 옷을 가져오게 해서 입히고, 금가락지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 잡아서 잔치를 열었던 것과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와 같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자녀 삼아 주셨던것입니다. 

 

4. 

 

예수 복음 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들에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사울이 빛에 둘러 싸여 땅에 엎드러져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면서 그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9:5>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다메섹의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런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행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강력한 빛으로 인해 눈을 떴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했던 사울에게 안수해서 다시 보게 하는 일과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는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길 원하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우리들 역시도 사울과 같이 믿음의 눈이 뜨여져서 다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성령 세례를 통해 우리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 말씀과 같이 영혼을 구원하고 영의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이 땅에 사는 것으로 다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 그리고 영원한 고통, 영원한 지옥이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도 겉 모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에 어긋난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상식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할 때 선뜻 그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먼저 영혼을불쌍히 여길 줄 아는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의 아픔과 상처를 볼 수 있는 것 때문에 예수님과 같이 자신을 희생해서 구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아무리 화려한 것도 하늘의 영원한 것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임을 알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하늘의 것을 위해사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만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스데반 집사와 같이 하늘이 열리고 그리고 그렇게 열린 나의 하늘 위로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믿음이 눈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라고 하셨을 때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는 제자들을 핍박하는 자였고 그리고 이 다메섹도 제자들을 잡아 끌고 가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이르시기를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라고 하시면서 <행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사울이 앞으로 예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 고난과 핍박이 있을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럴 때의 고난과 핍박은 내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면서 힘 주시고, 지켜 주시고, 능력 주셔서 이끌어 주실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과 같이 험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순결한 신부로 맞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를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지만 믿음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악한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더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를 했고,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 역시도 성령 충만한 성도 믿음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리고 사울이 음식을 먹으매 강건 해졌다고 하는 것과같이 우리들 역시도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는 눈이 달라지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볼 때도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출신 목수가 아니라 나의 사랑, 나의 구원자, 그리고 나의 그리스도로 분명하게 보실 수 있는 여러분들이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들을 볼 때도 웬수로 보지 마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긍휼히 여기실 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고후5:16-17>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람들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될 사람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것 바라보게 되면 세상 것의 포로가 되어 고통스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부정적인 눈으로 보지 마시고 하나님 함께 하실 때 얼마든지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의도구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A.W.토저’ 목사님의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다]라는 책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개가 밤에 집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을 봤다고 해 봅시다. 

개들은 눈이 좋기 때문에 별들을 사람보다 더 잘 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들에서 밤에도 양떼를 치며 하늘의 별을 봤던 다윗은 달랐습니다. 

<시8:1-4>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2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다윗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봤고, 그리고 그런 모든 아름다움들이 인간인 자신을 위해 지으신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닫고 감격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다윗은 집에서 왕따를 당해 들에서 홀로 양들을 쳐야 하는 운명에 던져졌던 사람이었지만 그것에 대해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며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됐던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시고 하늘을 보시고, 주님을 바라보시고, 세상과 환경 다르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여러분 마음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그런 좋은 천국, 너무 좋아서 아직도 그 천국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가정, 상터, 직장, 교회를구원해서 천국되게 하시는 복된 믿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5.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고 말씀을 마칩니다. 

‘존 하퍼’ 목사는 영국 글라스고와 런던, 두 교회에서 목회를 했던 열정적인 목사였습니다. 

그런 그가 미국의 ‘D.L.무디’ 목사님의 이름을 딴 ‘무디 교회’에 부임하기 위해 여섯 살 난 딸과 함께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타이타닉 호는 빙산과 충돌하면서 침몰해 약 15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었습니다. 

그런 사고가 발생하자 하퍼 목사님은 어린 딸을 구명정에 태우고 그리고 자신도 보호자 격으로 마땅히 배에 탈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구조하는 대신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배가 침몰해서 사람들이 죽게 되면 지옥 갈 것에 대해 너무나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퍼 목사님은 딸을 구명종에 승선시키고 자신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달려가 열정적으로 예수님과 그 복음을 전했습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하퍼 목사님은 더더욱 서둘러서 여성들, 어린이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을 복음의 생명선에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어떤 한 남성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모습을 보고 “나보다 당신에게 더 필요합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구명 재킷을 벗어서 입혀주었습니다. 

마침내 배가 가라앉고 사람들이 차가운 얼음바다 위에 겨우 파편 조각 하나를 붙들고 버팅기고 있을 때 그럴 때도 목사님은 온 힘을 다해 헤엄쳐 다가가예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목사님 역시도 체온 저하로 인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4년이 지났을 때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생존자 모임이 열렸습니다. 

그때 한 남성은 당시 대서양의 얼음 바다 한 가운데서 대면했던 하퍼 목사님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하퍼 목사님이 자기에게 다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구원 받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두 번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번은 거절했고 그리고 두번째 발 아래 시퍼런 바닷물을 내려다보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가실 때쯤 자신은 구명정에 의해 구조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I am the last convert of John Harper.”(저는 존 하퍼의 마지막 개종자입니다.)

이는 하퍼 목사님이 자신의 생명을 주어 자신을 구원했다는 뜻이고, 그것 때문에 그는 육신의 삶이 아니라 영생의 삶을 살고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아 하나님의 좋은 것을 상속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나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예수님을 알고 구원 받아 살 수 있다고 하면 그 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라고 원망하는 대상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내가 구원 받아 참 기쁨의 삶을 산다, 그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 하시며 모든 일을 감당케 하시고,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며,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를 믿으시고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전도자로의 운명이 바뀌는 복된 믿음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시고 복음 전도자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단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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