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사순절 묵상(3.5) > 교회소식

본문 바로가기

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4-03-04 22:15

본문

사순절 묵상(3.5.2024)

 

▨ 마태복음 7:1-12

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받을 것이니라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이 비판을 받지 않으려고 하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몇 가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비판하는 그것으로 내 자신 또한 비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내 자신이 남을 비판하기에는 어떤 면에서는 그 보다 더 허물이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남은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들보’는 건물을 떠 바치는 기둥과 같은 것입니다. 

‘들보’는 ‘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것이지요.  

내 자신, 상대보다도 더 허물이 많으면서는 그것도 모르고 남을 비판한다면 그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요, 결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들이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마태복음>의 주제, 곧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하게 되면 그 비판으로 나도 판단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천국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맙니다. 

그 실 예가 바로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에 시험에 넘어져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습니다. 

그것 때문에 눈이 밝아져서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자 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관계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서 가렸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눈이 밝아져서 상대의 허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 가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에덴’이라는 말은 ‘큰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죄의 결과 서로 상대의 허물을 보고 비판한 결과 그 비판으로 자신도 비판을 받아 결국 ‘에덴’이라고 하는 기쁨, 천국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남을 비판하지 않는 삶을 통해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늘도 이미 내게 주어진 천국을 경험하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될 수있는 것입니까? 

첫째는 말씀 그대로 내가 비판 받지 않으려고 하면 먼저 나 자신부터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오늘 <마7: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사람은 누구나 대접 받기를 좋아합니다. 

존중히 여김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이 좋은 대접 받기를 바란다고 하면 먼저 남을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 자신도 동일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인데, 그것은 기도 생활을 꾸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비판하지 않는 신앙 생활, 저는 이것이야 말로 참 수준 높은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을 놓고 비판하는 이야기가 시작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비판이 쉽게 그쳐지지 않는 것은 물론 옛말에 빚으로 소도 잡아먹는다는말과 같이 해서는 안되는 오해 그 이상으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이런 비판에는 지위고하가 없습니다. 

누구나 한번 비판이 시작되면 열의를 갖고 참여하기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남을 비판하지 않는 신앙은 참 수준 높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높은 수준의 신앙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의 필요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우리들이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부어졌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소유한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러므로 천국을 경험하며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7:11>에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했지만, <눅11:13>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로 그 좋은 것 ‘성령’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성령님께서 임재하실 때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내 삶을 다스리심으로 우리는 절대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여러분들도 대접하시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아침에도 내 마음가운데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인격적인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말미암아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이 되시고, 그리고 여러분 안의 천국이 계속해서 가정에서, 상터에서, 또 어디든 모든 삶의 자리에서 강같이 흘러 넘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 마음에 성령 하나님으로 임재하여 주셔서 다스려 주심으로 남을 비판하지 않게 하시고 그러므로 약속해 주신 천국의 삶이내 자신과 내 삶의 모든 주변에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