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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4년 사순절 묵상(3.4) - 주일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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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24-03-0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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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에 이끌리는 생명의 삶<행8:26-40>

 

1.

 

인생은 저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삽니다.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끌어가는 삶]과 같이 어떤 이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돈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부인이 말 한 마디만 해도 깜짝 놀라는 경처가와 같이 부인에게 매여 혹은 사람에게 매여 이끌리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은 주말만 되면 산과 바다로 캠핑 가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캠핑을 위해서 일주일을 일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취미나 즐거움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상처나 혹은 상한 감정에 이끌려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긍정적인 사고에 이끌려 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사람은 저마다 누군가 혹은 뭔가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장>에서 육에 이끌리는 삶과 영에 이끌림을 받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롬8:5-8>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 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마음이 육의 욕심에 이끌려 따르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결과는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한 예로 ‘아간’이라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그 안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취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럴 때 아간이라는 자가 무너진 건물 사이로 시날 산 외투 한 벌과 금 은 덩이를 보고 욕심이 생겨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것들을 취해 자기 장막에 숨겨 놓습니다. 

욕심에 이끌렸던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아이성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합니다. 

패배의 원인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아간의 죄가 드러났습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은 물론 아간이 취했던 물건들 그리고 가족들과 가축들까지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 처형을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아간이 욕심에 이끌렸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다윗’도 육의 욕심에 이끌려 ‘우리아’의 아내를 취했다가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우리들은 절대 육의 욕심에 이끌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빌립’ 집사가 영, 곧 성령을 따랐을 때 얻었던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와 평안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이르시기를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라고 했습니다. 

그 길은 광야라고 했습니다. 

빌립 집사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갔더니 거기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빌립은 다시 성령에 이끌려 내시에게 나아가 “당신은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시는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하면 병거로 올라와서 나를 좀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빌립 집사는 병거에 올라 내시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설명합니다. 

내시는 빌립 집사가 전하는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빌립 집사는 계속해서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에디오피아는 상당수의 인구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 국가이고, 6.25 한국 전쟁 때 우리 나라에 대대병력을 파병해서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도록 피흘려 싸워준 나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영입니다. 

우리의 삶이 육의 욕심이나 세상 것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영 곧 성령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게 되면 그 사람은 빌립 집사 이상의 복된 하나님의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 욕심 등 죄악된 것에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뿐만 아니라 세상 것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영에 이끌려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들이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믿음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아가 죽고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있으셔야 합니다.

인생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나를 통해 일하시는가? 누가 나를 이끌어 가시는가?’라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명과 복된 인생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거하시며 내 삶을 이끌어 가실 때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내가 죽고 내 안에 하나님께서 영으로 사셔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애굽에서의 40년의 인생은 애굽 공주의 아들로서 화려한 삶이었지만 광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인생을 이끌어가는 삶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광야에서의 또 다른 40년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했던 동족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위대한 일꾼이 됐습니다.

모세의 이런 엄청난 변화는 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으로부터 이끌림을 받는 삶이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에게 쫓겨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던 모세는 들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렙 산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는 히브리어로  ‘סנה’(스네/쎄네)라고 하고, 그 뜻은 ‘찌르다’라는 말에서 유래됐습니다.

떨기나무는 가시가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통의 경우 나무에 불이 붙게 되면 점점 사그러 드는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그러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모세가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라고 하며 다가 갔는데 그와 동시에 야웨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을 이끌어내라는 사명을 받고, 민족을 해방 시키는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 받게 됐습니다. 

 

우리들이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생명과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역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말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죄인인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와 그 사랑을 깊이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해병대의 일원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었던 영성가 ‘브레넌 매닝’이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던 경험을 [그대 주님 따르려거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960년대 말, 이 분은 7개월 동안 스페인 자라고사 사막 1800미터 지점에 있는 한 동굴에서 묵상을 하며 지냈습니다. 

동굴에서 지내는 동안 마을 사람이 일주일마다 음식과 물을 지정된 장소에 놓고 가는 것 외에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고 사람 목소리 조차도 듣지 못했습니다. 

브레넌은 그런 동굴 안을 돌로 주거실과 예배실로 구분을 했고, 매일 새벽 2시면 일어나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12월 13일, 그 날도 역시 길고 외로운 기도를 게 드리는데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 너를 사랑해 아버지 곁을 떠났다. 내게서 달음질치며 달아났던 너에게, 내 이름조차 듣고 싶어하지 않던 너에게 다가갔다. 내 너를 사랑해 침뱉음을 당했고, 못에 찔렸으며, 채찍으로 맞았고, 나무 십자가에 달렸다.”

그런 주님의 음성에 브레넌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감동케 하심을 따라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상을 주시하는데 예수님의 몸에 있는 모든 땀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리는것이 보여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그 순간 브레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자신을 위한 진실된 죽으심을 깨달아 졌습니다. 

그때 그는 누구도 그 자신을 그렇게 사랑해준 사람은 없었고, 또한 앞으로도 주님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느껴졌고 어떻게 그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동굴 밖으로 나가 벼랑 끝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기를 “예수님, 제 정신이십니까?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다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에 예전에 어떤 한 스승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 사랑을 알 수 있다. 일단 그 사랑을 받기만 하면 세상 그 무엇도 더 이상 아름답거나 탐나지 않게 된다.’

그때부터 브레넌은 예수님이 있는 사람이 되고 더 이상 자신이 자기 인생을 이끌어 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삶으로 변화되게 됐습니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봤던 불이 붙었지만 사그러들지 않았던 떨기나무는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시기 위해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예수님과 그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사그러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곧 그와 같이 우리를 사랑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절대 식지도 사라지지도않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러면서 “내가 너를 이처럼사랑한다”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요14:6>에서 이르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안에서 욕심에 이끌렸던 여러분의 옛 자아가 죽었고,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내 자신 역시도 새 사람으로 거듭났음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영으로 거하심을 믿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다음 우리들이 성령님에 의해 이끌리는 생명의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나는 그런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라는 분명한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8:9>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 삶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 안에 하나님께서 영으로 거하신다고 하는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이 넘었다고 하는 ‘1212 사태’를 배경으로 한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영화를 통해 도전 받았던 것은 ‘전두광’이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해 가는 것으로 구테타가 시작됐을 때, 전세가 완전히 전두광으로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수도경비사를 지키고 육본을 지켰던 몇몇 장성들과 그리고 그 지휘관을 따랐던 젊은 소령이었습니다. 

젊은 소령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령은 끝까지 남아서 사령관을 지키다가 총에 맞아 죽습니다. 

그 이유가 자신이 누구라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구테타를 일으킨 전두광을 척결하는데 목숨을 걸었던 수도경비사 사령관은 이런 말을 합니다. 

‘군인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군인인 그 자신의 정체성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도 역시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광을 척결하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넘습니다. 

그렇게 그도 붙잡혀서 고문을 당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교회 오고 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 우리 심령의 core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고 그런 나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는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은 마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세상 세파에 이리 저리 흔들릴 뿐만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마귀 사단의밥이 되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겔47장> 말씀을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오는데 일천 척을 나가서 쟀더니 물이 발목에 오르고 또 일천 척을 나가서 쟀더니 무릎에 오르고, 또 일천 척을 나가 쟀더니 허리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천 척을 나가서 쟀을 때 그때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하는 큰 강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강물이 닿는 곳마다 번성해서 좋은 열매들이 있고, 고기들도 많고, 나뭇잎은 좋은 약재료가 되고, 그리고 강물이 닿은 바다가 살아나는역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발목이나 무릎 혹은 허리까지의 신앙이 아니라 다시 말씀 드려서 내 생각으로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수준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지배하시고 이끄시는 믿음이 될 때 이끌림 받아 그 사람은 삶에는 좋은 열매가 있고, 번성케 되고,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고 그렇게 생명의 역사들로 풍성한 삶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사랑의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께 사랑 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 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19세기 초 미국의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변호사 출신의 복음전도자 ‘찰스 피니’는 하나님을 향해 불타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삶과 사역에 불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심령에 다시 불이 붙을 때까지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심령에 육이 득세해서는 사망이고, 영이 살아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만 생명의 역사가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음을 믿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으로 이끌림 받으시는 복된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생명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일하실 때 즉시 순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행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성령께서 빌립 집사 더러 광야로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럴 때 빌립 집사님은 얼마든지 반문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사마리아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야로 나가라고 하시다니요? 광야에는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또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해도 광야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8:27> ‘일어나 가서 보니’

빌립 집사님은 그대로 순복해서 일어나 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해 그 한 영혼을 구원하고 에디오피아가 복음화가 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광야 길이라’

거친 광야 길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의 음성에 순복하기만 하면 오히려 그 광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기적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을 경험할 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일하실 때 내 생각이나, 내 고집, 혹은 어려움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그 뜻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복하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복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레스터 섬랄’이라는 목사님은, 필리핀에서 5년 동안 다섯 사람밖에 전도를 하지 못한 선교사였습니다. 

이 때문에 섬랄 목사님은 하나님이 실수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교도소에서 수감 된 한 여자 무당이 얼마나 쌘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또 그런 무당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무당이 저주를 하면 그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교도관들도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성령님께서 선교사님의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나의 종이니 네가 가서 그 무당 여인을 고침을 받게 하라.”

그럴 때 선교사님은 “아니 하나님 제가 어떻게 거길 갑니까? 하나님 또 실수 하시는 겁니다. 저는 못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았을 때나 떴을 때나, 앉았을 때나 서 있을 때나, 밤이나 낮이나… 같은 성령의 음성이 반복해서 들리는 것입니다.  

‘네가 가서 그 무당이 고침 받게 하라’

결국 선교사님은 용기를 내서, 교도소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무당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교도관이 하는 말이 “목사님, 험한 꼴 당하지 않으시려거든 그냥 돌아가시라”고 했습니다.

무당이 저주를 하면 목사님도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 교도관이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무당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놀라운 일은 무당은 본래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가 유창한 영어를 하면서 예수님과 선교사님을 향해 욕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무당을 향해 선교사님은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너 원수 마귀 귀신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여인에게서 나오라!”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무당이 쓰러지더니 거품을 물고 발버둥을 치고는 귀신이 나가게 됐습니다. 

이후에 정신을 차린 무당은 목사님 앞에 앉아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게 됐습니다. 

이 이야기가 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필리핀 전역에 알려지자, 놀랍게도 15만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5년 동안 단 다섯 명 밖에 전도를 하지 못했었는데 성령의 음성을 따랐더니 무당에게 있던 귀신을 쫓아내고15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된것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 저녁, 차를 마시기 위해 아라파호에 있는 한국 음식점들이 모인 콤플렉스를 갔었습니다. 

갔더니 그곳에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은 덴버에 있는 몇몇 교회 찬양팀들이 모여 찬양을 했다는 것입니다.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이 덴버 땅에 계속해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더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더 많은 찬양과 더 많은 기도의 역사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 덴버제일감리교회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 미국 유학을 위해 일년 동안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공부가 아니라 목회로 이 미국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한 결과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세네갈에 선교를 위해 예배당까지 지을 수 있는 교회가 됐습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고전2:9>에서 하신 말씀을 좋아합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과 같이 저 자신 믿는 것은 우리 덴버제일감리교회는 앞으로도 계속 눈으로 보지 못하고, 또 귀로도 듣지 못하고, 또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했던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나갈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을 그렇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 사용하실 것입니다.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이 말씀과 같이 우리 안에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모든 일들을 이루어 반드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는 <롬8:14>에서 말씀하기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빌립 집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우리들이 복된 사람들이 되도록일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 모두 빌립 집사와 같이 토를 달지 말고, 어떤 이유도 달지 말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리고 사랑하심을 믿고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복하심으로하나님의 위대한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시는 복된 믿음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결론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때리고 죽이고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가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생명을 주시고 또한 풍성하게 좋은 것들을 주십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시23:1>에서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좋은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내로 인도하시고 때론 우리들이 힘들고 어려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시면서까지 지키시고 복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원수 마귀 앞에서 도리어 상을 받게 하시고 영광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요10:14-15>

14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누구를, 무엇을 따라 사시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생각이나 혹은 마귀가 집어 넣어주는 부정적인 생각, 미움, 시기, 질투, 죄, 물질, 쾌락, 세상 그 어떤 것들을 따라 사시겠습니까?

육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의 것으로 망하지만,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따라 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십니다. 

그 좋은 모든 것들은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부터만 오는 것임을 아시고, 성령을 따라 사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참된 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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