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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2025년 신년특별새벽기도회(2) -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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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1,595회 작성일 25-01-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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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교회<엡3:14-21>

 

1.

 

사람들은 누구나 복 받기를 바란다. 

예전 한국 사람들 – 밥상, 숟가락, 밥 뚜껑, 심지어 밥상 보자기에도 ‘복’(福) 자를 새겨 놓으면서까지 복을 갈망했다.

새해에 “새해 복 받으세요”라는 인사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믿는 자들은 이미 최고의 복, 최고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엡1:3-6>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자녀가 누구인가?

자녀는 상속자다. 

<갈4:6-7>

6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상속자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다. 

종은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종은 종일 뿐이지만 상속자가 될 수 없다. 

이는 종교인은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종교인일 뿐이지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마음에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아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 만이 상속자다. 

우리들이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마음에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아 위로 난 사람, 곧 하나님으로부터 났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상속자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좋은 모든 것들을 상속 받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은 Amazon이나 삼성그룹과 같은 대기업의 상속자들을 부러워한다. 

부러워할 것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세상 상속자들에 대해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상속자 임을 알고 그 권세로 구하고 누리는 것을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엡1:17-23>까지 말씀을 보면 우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1)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2) 우리를 예수 안에서 불러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3)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주어진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가를 알아야 하고

4) 죽으셨던 주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든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된 기업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하시고 영광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알아야 한다. 

 

2.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세상에서 구별되게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복을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공동체 부어 주신다. 

이는 창세전부터 예수님 안에 감추어졌던 것인데 교회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됐다. 

 

바울은 <엡3:14-21>까지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인 우리 덴버제일감리교회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복을 상속 받아 누리고, 영광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첫째, 교회 구성원의 속사람이 강건해야 한다. 

<엡3:14-16>

14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사람은 보이는 겉사람이 있고,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다. 

속사람이 강건하다는 의미는 어떤 사단 마귀의 공격이나 시험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어떤 이는 말 한 마디에도 시험에 들어 넘어지는 사람 있다.

어떤 이는 반대로 어떤 심한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넘기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조금만 힘들어도 낙심하거나 염려 걱정에 사로 잡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무리 힘든 일을 당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 사람에게 평안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는 속 사람이 강건하기 때문이다.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바울이 편지할 때 그는 왜 속사람이 강건해야 한다고 기도한 것일까?

그 이유는 교회공동체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시험 되는 일들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에도 쉽게 넘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기업의 복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않을 만큼’<막16:18> 속사람이 강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곧 성령님께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신다.

성령은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은 진리의 말씀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뜻이다. 

교회가 멤버쉽을 가졌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반드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진리의 말씀을 사모해서 읽고, 배우고, 묵상하는 습관을 통해 말씀이 함께하는 삶이 될 수 있을 때 속 사람이 강건케 되는 것이다. 

말씀을 읽으라.

말씀을 배우라.

말씀을 소유하라. 

말씀에 이끌리는 삶이 되라.

그러면 우리 교회 공동체는 영적 성장을 통해 하나님께 약속하신 나라의 기업의 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둘째, 내가 죽어 예수만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엡3:17a>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마음에 영접해서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롬8:9>에서 이르기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했다. 

믿음 생활에서 그 마음에 예수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곧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 같은 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는 겉모습은 교인이지만 사실 그 속에 생명이신 예수님이 없기 때문이다. 

성도는 예수님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입으로 ‘내 안에 예수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내 안에 예수님이 있다 말하는 것보다도 삶 가운데 ‘저 사람 안에 예수님이 있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하다. 

어떻게 사람들은 내 안에 예수님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때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영광이 되는 때는 곧 내 자아가 죽었을 때만 가능하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내 자아가 죽었을 때에만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 그 사람의 삶 가운데 마침내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자녀됨의 기업의 복이 부어지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 이 새벽 시간을 통해 우리들 모두는 다시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의 삶을 살 수 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의 생명이 내 삶에 나타난다. 

그 이유는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말씀처럼 내 자신 이미 죽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하셨다<요12:25>.

여러분의 자아가 이미 십자가의 예수 안에서 죽었음을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오직 예수님만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이 삶에 가득한 복된 믿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엡3:17b-19>

17…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생각할 때 나 자신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면 또한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자식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온천하를 줄테니 자식을 달라고 해도 줄 수 없는 것이 자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으셨던 독생하신 아들을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은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고 오히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의 것을 취하려고 애쓰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주님께서는 돈 몇 푼도 아니고 온 천하 와도 비교 할 수 없는 자신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가끔 그와 같은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지만 ‘왜 그러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공동체로 하여금 기본적인 말씀의 지식 위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음과 깊음이 어떠한가를 깨달아 교회가 그리스도의사랑으로 뿌리가 박히고 터가 다져지기를 구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서로 간에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그런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이 교회 공동체에 약속해 주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복이 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교회 안에 충만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3.

 

말씀을 마무리 한다.

나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을 따라 ‘덴버의 부흥을 선도하는 교회’ 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 구성원들 모두가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어떤 시험이나 도전에도 넘어지지 않는 강건한 속사람의 사람이 되자. 

내 자아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음을 알아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믿음의 삶을 살자. 

우리들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나눔을 통해 뿌리가 박히고 터가 다져져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되어 하나님을 영광을 보고 영광을 나타내는복된 성도 복된 교회되자. 

 

▣ 오늘의 우리의 기도

1) 하나님, 우리 덴버제일감리교회 공동체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2) 우리 교회에 교육관을 주시고, 다음 세대가 불같이 일어나 열방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교회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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