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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사순절 묵상(4.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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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1,057회 작성일 22-03-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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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고난 주간: 세족 목요일(4.14.2022)


▣ 성경 본문 : 누가복음 22:14-38


14시간이 되어서,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니, 사도들도 그와 함께 앉았다. 15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 16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다시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17그리고 잔을 받아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이것을 받아서 함께 나누어 마셔라. 18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19예수께서는 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0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그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21그러나 보아라, 나를 넘겨줄 사람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 22인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23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물었다.

24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25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뭇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26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27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28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다. 29내 아버지께서 내게 왕권을 주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준다. 30그리하여 너희가 내 나라에 들어와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고,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

31“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너희를 체질하려고 너희를 손아귀에 넣기를 요구하였다. 32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 33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34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없었습니다.” 36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또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37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렸다’고 하는 이 성경 말씀이, 내게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한 일은 이루어지고 있다.” 38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넉넉하다” 하셨다.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배반 당하신 밤으로 향한다. 그 밤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신 순간이기도 하다. … 우리 중 다수는 이 순간을 엄숙하게 기념하는 가운데 오늘날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손을 맞잡을 것이다.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이란 명칭은 라틴어 만다툼(mandatum), 즉 ‘계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그날 밤에 제자들에게 ‘계명’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었다. 

여기 누가복음의 설명에는 그 계명이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며 숙고하고 기도하다 보면, 예수께서 그의 친구들에게 보이신 관심과 사랑에 감동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호언장담하지만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지키지도 못할 거대한 약속을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위대한 약속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모습은 정말 우리와 똑같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보통 우리는 이런 점만 빼면 제자들을 받들어 모시면서 “우리는 절대 제자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모습은 정확히 제자들과 같을 수 있다. 갈피를 못 잡고, 선의를 가졌지만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한 순간은 예수를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다음 순간은 예수를 부인한다.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완전히 그릇된 방식으로 일을 벌인다. 그러면 우리는 이 거룩한 날을 지키면서 어떻게 이 이야기 속으로 우리의 기도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우리 자신의 이야기 정도가 아닌 우리 삶과 소망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까?

첫째, 그 이야기의 서로 다른 부분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에 주목하라. 이 사건은 그저 식사에 불과한 게 아니었다(물론 식사라는 사실도 핵심적인 측면이다). 또한, 이 사건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관점을 가르치고 본을 보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한, 곧 닥칠 재판과 도전을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둘째, 지금 그리고 당신이 성만찬을 받을 때면 언제나 이 만찬이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는 증표이며 그분의 나라를 가져오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라. 이런 이야기는 거대하고 중요한 말들인데,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마치 신부에게 영원히 헌신을 바치는 신랑처럼, 예수를 통해 자기 백성과 그분의 세계에 자신을 바치셨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의미이며, 성만찬 예식은 그 사실을 기념하는 결혼 피로연과 같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전 세계를 다스리는 구원의 통치를 확립하셨다. 이것이 바로 ‘나라’의 의미이다. 그리고 ‘하지만 현실을 보면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 같지 않아’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25-27절을 읽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 보라. 하나님은 탱크를 보내 통치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종을 불러 통치하신다. 

셋째, 다시 한 번 이 본문을 천천히 읽어보라.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 옆에 당신이 함께 앉아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의 눈에서 이 제자를 향한 사랑, 저 제자를 향한 사랑, 그리고 그들 모두를 향한 사랑, 마지막으로 당신을 향한 사랑이 느껴지는 모든 순간에 주목하라. 예수의 모든 동작에서, 심지어 제자들로 인한 좌절과 분노에서도 항상 쏟아져 나오는 것이 사랑이다. 그는 육신이 된 사랑이셨다.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를 대신해 서로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도 그의 사랑 때문이다. 


▣ 오늘의 묵상


당신은 오늘 밤 혹은 조만간 성만찬에 참여할 것이다. 그렇다면 참석하기에 앞서 다음 질문을 숙고해 보라.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으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세계를 섬기는 종으로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그 다음에는 이렇게 자문해 보라. “교회 건물을 빠져나가는 즉시 유혹과 적대감을 마주할 텐데, 어떻게 나는 성만찬을 통해 그런 현실에 맞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나이 든 지혜로운 주교께서 성만찬을 “전사들의 연회”라고 묘사하신 적이 있다. 성만찬은 밖으로 나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들을 잘 수행하도록 힘을 북돋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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