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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사순절 묵상(4.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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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FMC
댓글 0건 조회 1,091회 작성일 22-03-2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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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고난 주간: 월요일(4.11.2022)


▣ 성경 본문 : 누가복음 22:54-65


54그들은 예수를 붙잡아서,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라갔다. 55사람들이 뜰 한가운데 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여 앉아 있었다. 56그 때에 한 하녀가 베드로가 불빛을 안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빤히 노려보고 말하였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어요.” 57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부인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나는 그를 모르오.” 58조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서 말했다.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그러나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란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59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강경하게 주장하였다. “틀림없이,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소. 이 사람은 갈릴리 사람이니까요.” 60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베드로가 아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곧 닭이 울었다. 61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났다. 62그리하여 그는 바깥으로 나가서 비통하게 울었다.

63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때리면서 모욕하였다. 64또 그들은 예수의 눈을 가리고 말하였다.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맞추어 보아라.” 65그들은 그 밖에도 온갖 말로 모욕하면서 예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베드로와 자신을 동일시 하기가 크게 어려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를 신실하게 따르겠다고, 그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늘 굳건하게 서서 필요하다면 고난도 받고 언제든지 그와 그의 나라를 강력하게 변호하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모두 안다. 너무나 잘 안다. 

그런 후에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누군가 우리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부드럽지만 경멸하는 눈치로 이야기한다. “아,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군요! 이제 알았어요.” 그러고는 냉소를 짓는다. 우리는 뒷걸음친다. “이런, 저는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설마 저를 광신도로 취급하시는 건가요?”

때로는 부드러운 접근(여종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이 총공격 보다 더 효과적이다. 병사 중 한 명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가슴을 맞대고 질문했다면, 베드로 특유의 남자다움 때문에 오히려 당당히 맞섰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태도는 예수의 제자가 보여야 할 진정한 용기는 아니다.

그리고 일단 내리막길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첫번째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는데, 두번째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대답한다면 비밀을 실토한 정도가 아니라 어리석고 유약한 사람을 비쳐질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질문이 날아온다. 베드로여, 아예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때때로 예수는 우리의 실제 연약함을 발견하도록 허락하신다. 심지어 아니 특별히 그 사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할지라도 말이다.

당신이 베드로의 몸속에 있는 상황인데, 예수께서 몸을 돌려 당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신다면, 당신은 그때 어 떤 기도를 하겠는가?

예수는 앞에서 들려주셨던 그 말씀으로 기도해 보라고 권고하실 것이다: “하나님, 저는 죄인이니,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누가복음18:13).

방금 전에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게 쉬웠던 정도로, 이번에는 “하나님, 저는 죄인이니,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는 이 말로 기도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렇게 시인해 보라. 어렵겠지만 실은 짧은 뒷걸음질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도 다른 내용도 있다. 우리 자신이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혹은 사람들이 하니님이나 ‘종교’, 예수를 향해 무례하게 굴 때, 파악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온갖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껄이며 때로는 그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오늘 본문에 그런 모습이 보인다. 예수는 사역 도중 다양한 단계에서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거짓 선지자’ 혐의를 받았다. 병사들도 이런 소문을 들은 게 확실하다. 좋아, 그렇다면 이 자를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만들어 보자. 눈을 가리고 머리를 때린 다음 누가 때렸는지 물어보자.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누가 때렸는지 맞추겠지! 역시 난 똑똑해. 굉장히 재밌겠어. 물론 장난 삼아 죄수를 학대한 병사는 이들이 마지막이 아니다. 이 상황은 마치 베드로가 그 당시 느꼈을 수치심이 겉으로 드러나 공공연하게 예수의 머리 위에 쌓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는 예수가 정말로 참 선지자셨으며 방금 그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안다는 사실을 세 번 부인한 다음에야 오늘 닭이 울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실제로 예수를 부인했다.  


▣ 오늘의 묵상


바울은 주님이 그에게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한다. 이 일화 속 베드로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당신 자신의 약함을 생각해 보라. 그 약함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치유와 복과 강함을 간구하라.


내 수치를 취하시며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여전히 저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여, 저를 도우셔서 제 연약함을 깨달으며 또한 저를 구원하고 강하게 하시는 당신의 능력을 배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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